CHAPTER 03

학습

책 만 권을 읽힌다는 것

03. 학습: 도서관을 통째로 읽는 법

GPT-4 정도 되는 AI 한 대를 만드는 데 든 전기료가 작은 지방 도시 한 달치 전기 사용량보다 많을 수 있다는 거 — 들어보셨나요? 과장이 아니에요. 진짜로 그래요.

AI 가 "똑똑해진다" 는 게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렇게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걸까요? 사실 그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은 의외로 단순합니다. 빈칸 채우기 시험, 그것도 같은 시험을 어처구니 없는 횟수로 반복하는 일이에요.

학습 = 끝없는 빈칸 채우기

ChatGPT 같은 모델을 만드는 첫 단계를 사전학습(pretraining, 본격적으로 쓰기 전에 미리 시키는 큰 학습) 이라고 불러요. 인터넷에서 긁어온 어마어마한 양의 글을 모아두고, 그 글들에서 일부러 한 단어씩(정확히는 한 토큰씩) 가린 뒤, 모델한테 그 빈칸을 맞춰보라고 시키는 일이에요.

flowchart TD A["원문: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<b>만유인력</b>을 발견했다"] A --> B["빈칸 만들기: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_____ 을 발견했다"] B --> C["모델 추측: <b>중력</b>"] C --> D{"정답과 비교<br/>(정답: 만유인력)"} D -->|틀림| E["모델 안의 숫자들을<br/>머리카락 한 올만큼 조정"] E --> F["다른 빈칸으로 이동"] F -. 수십억 번 반복 .-> A

이걸 한 번 한다고 똑똑해지진 않아요. 같은 일을 수십억 번 반복합니다. 매번 한 글자 어긋날 때마다 모델 안의 숫자들이 머리카락 한 올만큼씩 움직여요. 그게 천 번, 만 번, 십억 번 쌓이면 — 어느 순간 모델은 "뉴턴" 다음에 "만유인력" 이 나올 확률이 높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돼요. 시험을 본 게 아니라, 패턴을 몸에 새긴 거예요.

그래서 "파라미터" 가 뭔가요

여기서 등장하는 게 파라미터(parameter, 모델 안에 들어 있는 학습 가능한 숫자) 예요. 사전학습이 진행되면서 살짝씩 움직이는 게 바로 이 숫자들이에요.

GPT-3 는 파라미터가 약 1,750억 개. GPT-4 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1조 개를 넘는 것으로 추정돼요. 이 숫자들이 다 같이 어우러져서 "다음에 뭐가 올지" 의 확률을 만들어요. 한 사람의 뇌에는 시냅스가 약 100조 개 있다고 하니까 — 아직 사람보다는 작아요. 하지만 그 차이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죠.

[파라미터 수 비교]

GPT-3 (2020)      ▏                          1,750억 개
GPT-4 (2023)      █                          1조 개+ (추정)
사람의 시냅스     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    약 100조 개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↑ 아직 사람보다 작지만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차이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어요

그래서 그렇게 비싼 거예요

빈칸 채우기 시험을 수십억 번 반복하면서 1조 개의 숫자를 미세하게 조정하려면, 어마어마한 컴퓨터가 필요해요. 보통 수천에서 수만 대의 GPU(Graphics Processing Unit, 원래 게임 그래픽용으로 만들어졌지만 AI 학습에 가장 잘 맞는 칩) 가 동시에 돌아가요. 이 GPU 들이 몇 주에서 몇 달간 쉬지 않고 돌아가요. 결과는 — 작은 도시 한 달치의 전기.

GPT-4 한 번 학습하는 데 들어간 비용이 1억 달러를 넘었다는 추정도 있어요. 우리가 무료로 ChatGPT 를 쓰고 있는 그 모델이, 그렇게 비싸게 만들어진 거예요. 그래서 새 모델을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전 세계에 손에 꼽혀요. 돈이 많아야 만들 수 있어요. AI 가 "민주적인 기술" 인지 "소수가 독점하는 기술" 인지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.

깜짝 놀랄 만한 한 가지

이 어마어마한 학습이 사실 "틀렸을 때 살짝 조정한다" 는 한 가지 단순한 규칙으로만 굴러간다는 점이 가장 신기한 부분이에요. 누가 옆에서 "이 답이 맞다, 저 답이 틀리다" 라고 하나하나 알려주는 게 아니에요. 모델이 추측하면 정답(원문) 과 자동으로 비교돼서, 차이가 있으면 그만큼 조정. 그게 다예요.

이걸 학계 용어로 경사하강법(gradient descent, 산 정상에서 안개 속을 더듬어 내려가듯 한 발씩 더 낮은 쪽을 찾아가는 방식) 이라고 불러요. 이름이 거창하지만 핵심은 — "틀린 만큼 그쪽으로 움직이지 마." 그게 다예요. 이 단순한 규칙이 데이터의 양과 모델의 크기를 만나면, 어느 순간 우리가 보기에 마법 같은 결과가 나와요. 사람들이 AI 를 "마법 같다" 고 말하는 건 이 단순함이 어떻게 이런 결과를 만드는지 직관으로 와닿지 않아서예요. 솔직히 — 만든 사람들도 다 이해하진 못해요.

비유에는 한계가 있어요

"빈칸 채우기 시험" 비유는 가장 핵심적인 학습 방식만 그린 거예요. 사실 그 위에 사람의 피드백을 받는 단계, 도구 사용을 학습하는 단계 등 여러 층이 더 쌓여요. 일단 지금은 "AI 의 첫 학습은 빈칸 채우기" 라는 큰 그림만 잡으시면 충분해요. 사람의 피드백 부분은 7화에서 따로 다룰게요.

한 줄 요약

AI 의 학습은 거대한 도서관에서 빈칸 채우기 시험을 수십억 번 반복하는 일이고, 그때마다 모델 안의 수천억 개 숫자(파라미터) 가 머리카락 한 올씩 미세하게 움직여서 패턴을 몸에 새기는 거예요.

다음 화

이렇게 학습이 끝난 모델은 어떻게 답을 만들까요? 한 단어씩 만들어낸다는 건 알고 있는데 — 그 한 단어는 정확히 어떻게 골라지는 걸까요?

04화 — 답이 나오는 순간