CHAPTER 01

다음 단어 맞추기 게임

ChatGPT 의 본질은 한 단어씩 찍는 일

01. 다음 단어 맞추기 게임

사실 ChatGPT 는 다음에 올 단어를 찍는 게임만 해요. 정말 그게 다예요.

여러 권의 책, 수많은 논문, 박사 학위, 노벨상 — 인공지능이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 숨어 있는 본질은 의외로 단순합니다. 한 단어 보고, 그 다음 단어 맞추기. 다시 그 둘을 보고, 그 다음 단어 맞추기. 끝없이 반복. 그게 전부예요.

이 한 문장만 잡고 가면 이 글의 절반은 이미 이해하신 거예요.

휴대폰 자판이 하는 일

여러분이 카톡을 쓸 때 자판 위쪽에 작은 글자들이 떠 있는 걸 본 적 있으실 거예요. "안녕" 을 치면 옆에 "하세요" 가 뜨고, "오늘" 을 치면 "날씨가" 가 뜨고. 휴대폰이 여러분의 다음 단어를 짐작해서 미리 띄워두는 겁니다. 우리는 그게 너무 익숙해서 신기하다고 느끼지도 않아요.

ChatGPT 가 하는 일은 이것의 거대한 친척이에요. 정말로 친척. 더 똑똑해 보이지만, 본질적으로 같은 일을 합니다. 차이는 단지 규모예요.

휴대폰 자판은 여러분이 자주 쓰는 단어 몇 만 개를 보고 다음을 짐작합니다. ChatGPT 는 인터넷에 있는 거의 모든 글을 보고 다음을 짐작해요. 휴대폰은 여러분의 카톡을 본 거고, ChatGPT 는 위키백과·논문·소설·신문·블로그·매뉴얼·시집·코드까지 본 거예요.

[자료의 양]

휴대폰 자판   ▏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여러분이 친 단어 몇 만 개
LLM           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█      인터넷의 거의 모든 글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↑ 양이 어느 선을 넘는 순간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"흉내" 가 "이해" 처럼 보여요

양이 다르면 질이 다르게 보입니다. 양이 어느 선을 넘어가는 순간, 우리는 그것을 "흉내" 가 아니라 "이해" 라고 부르고 싶어집니다. 그게 ChatGPT 를 보며 "아 얘 똑똑하네" 라고 느끼게 만드는 마법의 정체예요.

LLM 이라는 이름의 정체

이런 모델을 통틀어 LLM(Large Language Model, 대규모 언어 모델) 이라고 불러요. 이름 그대로예요.

  • Large — 크다. 모델 안에 숫자가 수천억 개 들어 있어요. 정확히 어떤 숫자들인지는 뒤에서 풀어드릴게요.
  • Language — 언어. 글자, 단어, 문장.
  • Model — 모델. 어떤 패턴을 따라 하는 흉내쟁이.

세 단어를 합치면 "엄청 큰 언어 흉내쟁이". 그게 다예요. 화려한 정의는 없습니다.

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그럴듯해 보일까

여기서 자연스러운 의문이 듭니다. "다음 단어 맞추기만 하는데 왜 사람처럼 답을 해?"

이렇게 생각해보세요. 누가 평생 책을 만 권 읽었다고 상상해보세요. 그 사람에게 "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어떻게 했을까요?" 라고 물었더니 "만유인력" 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면, 우리는 "아 이 사람 물리학을 아네" 라고 말하지 "다음 단어를 잘 맞췄네" 라고 하진 않잖아요.

ChatGPT 가 하는 일도 마찬가지예요. 학습한 글의 양이 너무 많아서, 다음 단어를 충실히 맞추다 보면 결국 우리가 보기엔 "이해하고 있는 것처럼" 보이는 거예요. 단어 하나하나의 정확한 선택이 모여서 한 문장이 되고, 한 문장이 모여서 그럴듯한 답변이 되니까요.

깜짝 놀랄 만한 한 가지

여기서 보너스로 하나 알아두시면 좋아요. ChatGPT 는 자기가 어떤 답을 할지 미리 알고 있지 않아요.

여러분이 질문을 보내면, ChatGPT 는 첫 단어를 하나 만들고, 그 첫 단어를 다시 자기 입력으로 받아서 두 번째 단어를 만들고, 그 둘을 다시 입력으로 받아서 세 번째 단어를 만듭니다. 매 순간 한 발 앞만 보고 있어요.

그림으로 보면 이렇게 생겼어요.

flowchart LR A["지금까지 쓰인 모든 글"] --> B["ChatGPT"] B --> C["다음 한 토큰"] C -. 이어붙임 .-> A

회차별로 보면 이런 식이에요.

  • 1회차: "오늘 날씨가"
  • 2회차: "오늘 날씨가 좋"
  • 3회차: "오늘 날씨가 좋네"
  • 4회차: "오늘 날씨가 좋네요",
  • 5회차: "오늘 날씨가 좋네요,"빨래
  • 6회차: "오늘 날씨가 좋네요, 빨래"하기
  • ...

매 단계에서 ChatGPT 가 하는 일은 똑같아요. 지금까지 쓰인 모든 글자를 입력으로 받아서, 그 다음에 올 한 조각을 짐작. 짐작이 끝나면 그걸 입력 끝에 이어 붙이고, 같은 일을 또 반복. "이 답을 멋있게 마무리해야지" 같은 큰 그림은 없어요. 그저 다음 발자국만 찍고 있을 뿐이에요.

그런데도 결국 답이 그럴듯하게 마무리된다는 것 — 이게 이 이야기의 진짜 신기한 부분입니다. 한 발씩 찍는 발자국이 모여서 어쩌다 보니 길이 되어버린 거예요.

비유에는 한계가 있어요

휴대폰 자판 비유로 시작했지만,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ChatGPT 는 휴대폰 자판이 아닙니다. 휴대폰 자판은 "이 사람이 자주 친 단어 패턴" 을 외워두는 정도라면, ChatGPT 는 단어들 사이의 의미 관계까지 함께 익혔어요. 그래서 같은 "사과" 라는 글자를 봐도 과일을 말하는지 잘못을 말하는지 구별할 수 있어요. 비유는 출발점이지 도착점이 아니에요. 다음 챕터부터 이 "단어를 본다는 게 정확히 뭔가" 를 천천히 풀어드릴게요.

한 줄 요약

ChatGPT 는 다음에 올 단어를 맞추는 거대한 흉내쟁이고, "이해" 처럼 보이는 모든 것은 그 맞추기를 어마어마한 규모로 했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산물이에요.

다음 화

그런데 ChatGPT 가 본다는 "단어" — 그게 정말 우리가 아는 단어일까요? 한국어로 "사과" 라고 입력하면 컴퓨터 안에서는 그게 어떻게 "사과" 가 되는 걸까요? 사실, 우리가 아는 단어가 아니에요.

02화 — 토큰: AI 가 보는 세상의 단위